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나치 독일/인물 (문단 편집) == 나치를 열렬하게 따른 인물 == * [[발터 폰 라이헤나우]] 독일 국방군 내에서 가장 유명한 나치로 알려져 있을 정도로 히틀러 집권 전부터 맹목적인 충성을 바쳤다. 독일군 초기 전역에 대활약을 하여 원수까지 진급했다 그러나 친나치 군인의 대명사였기 때문에 독일군 내부에서도 평판이 나빴고, 1941년 육군 총사령관으로 영전될 기회를 놓치기도 했다. 1941년~2의 동계 전투가 끝날 무렵 뇌출혈과 후송 지연으로 인한 심장마비로 사망했다. 만약 전후에도 살아남았다면, 키예프 대학살의 시발점이 된 강조명령이 제대로 재판을 받았다면 인종학살 범죄의 주범으로서 유죄 선고를 받았을 수도 있으나, 총사령부에 근무한 장성이 아닌 야전군 지휘관은 사형을 받은 예가 없다는 점에서 사형이 집행되었을 확률은 낮다. 하단의 쇠르너, 리스트 등과 비슷한 경우이다. * [[발터 폰 브라우히치]] 처음에는 오스터 음모 사건에 가담하고, 히틀러의 안슐루스 및 체코슬로바키아 병합에 소극적이었으나(침략 전쟁으로 이어질 경우 위 음모에 가담하기로 했었다.) 서방 연합국의 미적지근한 대응으로 히틀러의 뜻이 이루어지자 나치의 열렬한 지지자가 되었다. 심지어 출세를 위해 이혼하고 나치를 열렬히 따르는 여인과 재혼했을 정도이다. 이후 폴란드의 [[단치히 우체국 공방전]]에서 사로잡힌 포로들을 학살하라고 명령했으며, 독소전쟁 때에는 학살을 조장하거나 묵인했고, 반대하는 장교들에게는 이를 따를 것을 강요했다. * [[빌헬름 카이텔]] 히틀러의 예스맨으로 악명 높다. * [[페르디난트 쇠르너]] 라이헤나우와 쌍벽을 이루는 친나치 군인이다. 그리고 부하들의 목숨을 돌같이 여겼다. 다짜고짜 후방에 나타나서는 길가에서 우연히 마주친 병사를 끌어내서 그대로 총살시킨 사건으로 유명하다. 이렇게 사살당한 병사들에게는 그 어떤 군사 재판도 군법 위반도 없었으며 쇠르너가 일부러 공포 분위기를 조성하여 '''자신의 명령을 잘 듣게 하기 위해서'''였다고 부하 장교들이 진술했다. 쉽게 말하면 자신의 모자라는 지휘력을 부하들의 목숨을 땔감삼아 불을 지펴 싸웠다는 것. 종전을 앞두고는 장병들이 최후까지 소련군을 막는 동안 '''자신은 사령관 직을 내팽개치고 사복으로 갈아입은 채 도주하다 붙잡혔다.''' 결국 소련에서도 서독에서도 징역을 살았다. 소련은 그를 전범으로 고발하고 독일 군인들은 즉결 처형 혐의로 고발했다는 것. 괴벨스마저도 흐뭇하게 인정한 친나치 군인의 대명사. 히틀러를 만나고 올 때마다 전공에 욕심을 내서 무리한 전투로 부하들을 희생시킨 경우도 많았다. 때문에 전후 살아남은 장병들이 제일 증오한 장군으로 유명하다. * [[빌헬름 리스트]] [[청색 작전]] 당시에 목표 달성을 실패했기에 무능하다는 평을 받으나 사실 히틀러의 삽질이 더 크다는 의견이 많다 다만 리스트 개인의 정치적 성향은 상당히 문제가 있었다고 한다 친 나치 인사였고 [[블롬베르크-프뤼치 사건]] 당시 나치를 지지한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여기에 폴란드에서 학살을 주도하기도 했고, 발칸 반도에서는 대대적인 파르티잔 진압에 나서기도 했다. 그래서 [[뉘른베르크 국제군사재판]]에서도 종신형을 받았다. 그런데 5년만에 건강상의 이유로 출소했으니, 결국 죄값을 다 안 치른 것으로 볼 수도 있다 * [[에른스트 룀]] 에른스트 룀은 초기 나치당의 주요 인물 중 하나로, 돌격대(SA)의 사령관이었다. 그는 나치당 초기의 급진 사회주의 성향을 대표하는 인물이었고, 때문에 보수층의 지지를 잃거나 당에서 너무 눈치도 없이 나대기도 했고 그가 잠재적 경쟁자로 떠오를 것을 우려하여 [[장검의 밤]] 때 살해당하였다. 여담이지만 히틀러는 [[동성애]]에 부정적이었는데, 룀은 동성애자였다. * [[베른하르트 루스트]] (1883년 9월 30일 - 1945년 5월 8일) > "교육의 전 기능은 나치스의 육성" '''나치 독일의 교육부 장관''' 하노버에서 태어난 루스트는 제1차 세계 대전에서 전투 중 머리를 부상당하여 뇌손상을 입기도 했다 그러다가 1922년에 나치당에 입당한 루스트는 1930년 국회의원 선거에서 나치당의 후보로 나서 당선되었고 나치의 집권 이후에 장관으로 임명되었다. 루스트는 독일의 새로운 교육심벌로 교사와 학생들의 인사를 나치식 경례로 통일시켰다. 루스트는 교육의 기능은 나치당원을 만드는 데 있다는 [[개소리]]를 지껄였고, 유대인과 자기의 입맛에 안 맞는 학자 천명 이상을 추방시켰는데 이 중에는 그 유명한 [[알베르트 아인슈타인]], 제임스 프랭크, [[프리츠 하버]], 오토 마이어호프, 오토 바르부르크(히틀러 덕분에 추방은 면했다) 등과 같은 역사에 남을 과학자들과 노벨상 수상자들까지도 독일에서 추방시켰다. 그러면서 루스트는 아리아인이 아닌 사람이 하는 과학은 믿을 것이 못된다고 이야기했다. 그러나 참 아이러니하게도 이런 놈 때문에 [[나치 독일]]이 몰락하는 가장 큰 요인이 되었다. 그리고 루스트는 [[우생학]]을 필수 과목으로 채택하는 등의 인종교육정책을 실행했으며, 독일 대학에서 유대인들을 추방시켰다. 또한 나치의 지도자를 육성하기 위해서 나폴라(napola)를 30곳이나 창설하며 나치 독일의 사상을 독일에 주입시켰다. 그러나 이러한 교육 정책과는 달리 특이한 점은 [[히틀러 유겐트]]를 반대했다는 점이다. 루스트는 이것을 학교 교육에 벗어나는 위험한 짓이라고 반대했는데 히틀러가 시라흐를 지지했기에 [[히틀러 유겐트]]는 통과되고 말았다. 그리하여 그가 말했듯이 전쟁 말기에는 교육제도가 붕괴되어 어린 학생들도 방공임무에 동원되어 교육이라고 쓰고 개판이라고 읽는 상황이 되어버렸다. 그러나 이 상황에서도 방공호에서 학생들의 교육을 실시했다. 물론 전혀 인류에 도움이 안되는 쓸데없는 [[우생학]]이나 나치당원을 만드는 교육이었다고 한다. 그리고 결국 독일이 패전한 후인 1945년 5월 8일에 자살했다. 여담으로 최근 [[국정교과서]] 논란이 일어나면서 한국에서 이 인간에 대한 많은 이야기들이 나오고 있다. * [[율리우스 슈트라이허]] 반유대주의의 선봉자. 그가 창간한 잡지 돌격자(Der Stürmer)는 나치의 선전수단 중 가장 광범위하고 유대인에 대한 위험한 영향력을 끼치는 신문이 되었다. 뉘른베르크 국제군사재판에서 인륜에 대한 범죄를 인정받아 사형을 받고 교수형에 처해졌다. 그러나 그가 정말로 사형당할 정도로 위험하고 잔인한 인간이었는지는 조금 논란이 있다. * [[헤르베르트 바케]] (1896년 5월 1일 - 1947년 4월 6일) 헤르베르트 바케는 [[러시아 제국]]령이던 [[조지아|그루지야]]의 바투미에서 독일인 사업가이던 알브레히트 바케의 차남으로 태어났다. 그러나 아버지인 알브레히트는 사업 실패로 인해 1907년에 자살했다. 막막해진 그는 러시아 학교에서 공부했지만 제 1차 세계 대전의 발발로 독일과 러시아가 적대국이 되어 적성주민인 프로이센 사람들은 포로수용소에 보내지기도 했다. 러시아 혁명으로 제정이 붕괴된 후 레닌의 볼셰비키 정부는 1918년 3월에 독일과 [[브레스트-리토프스크 조약]]을 맺어 러시아가 전쟁에서 빠지자 바케도 수용소에서 해방되어 조국인 독일로 귀국했다. 전후에 나치당의 돌격대에 입대해 활동했고, 1925년 12월 1일에 정식으로 나치당에 입당했다. 1926년 11월 24일에 한번 탈당하기도 했지만 1931년 10월 1일에 복당했다. 입당 후 바케는 농업 경험을 살려 나치당 농민 지도자로 두각을 나타냈고 나치당이 정권을 잡은 후 1933년 10월 27일부터 농업장관 다레 밑에서 농업차관으로 일한 바케는 1942년에 농업장관 다레가 히틀러의 갈등이 생겨서 해임되자 대신 농업장관으로 임명되었다. 바케는 전시중에 유대인들이 죽게 되는 원인중 하나인 "기아 정책"을 실행해 유대인들과 포로들에 대한 식량 공급을 대폭 줄여 남은 식량을 군에 돌렸는데 이것이 전후 그가 전범으로 기소된 이유가 되었다. 전후 연합군에 체포되어 재판에 회부되었지만 그는 1947년 4월 6일에 수감 중이던 뉘른베르크 유치장에서 목을 매어 자살했다. 다만 그가 했던 "기아 정책"이 정말로 유대인을 죽이기 위해서 한 것인지는 애매하기 때문에 강력 [[전범]]인지 아닌지에 대해서는 논란이 좀 있는 편이다. * [[https://en.wikipedia.org/wiki/Jakob_Grimminger|야콥 그리밍어]] 히틀러의 의식용 깃발인 [[블루트파네]]의 전담 기수였다. 최종계급은 SS 대령.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